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해 ‘유력한 대선주자’로서의 행보를 시작하면서 함께 뜬 게 있다. 바로 ‘潘’이라는 글자다.

언론에서 <돌아온 潘, 대권행 열차 올라타다> <潘 “국민대통합” 본격 대선행보> 등으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潘’ 한 글자로 줄여쓰곤 하니까. 신문 제목이든 방송 자막이든 한 글자라도 줄이는 게 미덕인데, 몇 글자를 줄이는 건가.

그런 점에서 흔치 않은 성씨를 가진 정치인은 유리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추미애 민주당 대표,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 등. 그런데 반씨는 너무 흔하지 않다 보니, 제목에 한글로 ‘반’이라 쓰면 사람을 지칭하는 것인지 모를 수도 있겠다.

기사에 한자를 쓸 때도 한글을 친 뒤에 해당하는 한자를 골라 바꾸는데(한자 입력기), 반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고 입력 빈도가 늘어난다면 효율성을 높이고 실수를 막기 위해 한자 입력기상 ‘潘’의 위치를 앞으로 당겨야 하지 않느냐는 말도 기자들 사이에 농담처럼 나온다.
 

사실 ‘潘’은 쉽지 않은 한자다. 네이버 한자사전을 보면, ‘읽기 2급’ ‘쓰기 특급II’로 분류돼 있다. 난이도가 꽤 높다. 신문 제목이 아닌 본문에 이 한자를 썼으면 한글 독음을 병기할 법하다. 신문 제목에도 ‘潘’ 밑에 작은 글자로 <반기문>이라고 쓴 곳이 있다. 반 전 총장이 이렇게 유명해지기 전에 이 한자를 보여줬다면 ‘반’인지 ‘번’인지 아리송한 사람도 많았을 듯 하다.

‘潘’과 비슷한 글자로 ‘磻’이 있다. 조선시대 실학자 유형원의 호가 ‘반계(磻溪)’이고 그가 지은 책이 ‘반계수록(磻溪隧錄)’이다. 서울 생활을 접고 전북 부안의 ‘우반동(愚磻洞)’에서 은둔 생활을 했기에 호를 ‘반계(우반동의 냇물)’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 ‘磻’은 ‘번’으로도 읽히니, 서울 은평구 ‘녹번동(碌磻洞)’의 한자로 쓰인다.

 ‘潘’도 한자사전을 찾아보면, ‘磻’처럼 독음이 ‘반’도 있고 ‘번’도 있다.

[반]
1. 성(姓)의 하나
2. 뜨물(곡식을 씻어 내 부옇게 된 물), 쌀뜨물(쌀을 씻고 난 뿌연 물)
3. 소용돌이

[번]
(물이) 넘치다

‘潘’에 ‘뜨물’이라는 뜻도 있고 ‘소용돌이’라는 뜻도 있는 게 흥미롭다. ‘뜨물’이 가라앉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걸까? 과연 정계개편의 ‘소용돌이’를 촉발하는 걸까? 한자 입력기의 ‘潘’의 위치도 바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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