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S플러스 박상현 기자] 5월의 어느 날. 인터뷰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십수년을 스포츠 기자로 살아왔던 내가 처음으로 하는 영화배우 인터뷰, 그것도 여배우다. 심장은 아침부터 콩닥거렸다.

이번 영화가 데뷔작인 신인 배우라고는 하지만 연기 평가가 너무 좋아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연예인 인터뷰를 처음 하는 내게는 제법 부담스러운 존재임에 분명했다.

조금 일찍 서둘렀던 탓인지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빨리 도착했다. 그녀는 다른 매체와 인터뷰 중이었다. 탁자에 놓인 영화 원작의 책을 뒤적거리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다가 식곤증 때문인지 아니면 긴장이 풀린 탓인지 깜빡 졸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죠?"

청량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기자 체면에 졸았던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아니예요. 저희가 일찍 온 걸요"라고 말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섰다. 내 앞에는 바로 그녀가 서 있었다.

영화 '은교'의 히로인 김고은이었다.

인터뷰 약속을 일찌감치 잡고도 바쁘다는 핑계로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보지 못했다. 인터뷰 전날, 그것도 마지막 시간에서야 비로소 영화를 봤다. 어쩌면 영화를 본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녀를 본 것이 더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은교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그녀가 웬지 싱그러웠다. 소나기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무색하리만큼 파랗게 빛나고 있는 에메랄드 하늘만큼 환한 미소였다.

아직 20대 초반이라 그런가, 아직 소녀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내가 상상했던 여배우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도도한 그런 모습이 아니라 그냥 옆 집에 사는 예쁜 여동생 느낌이 났다. 두근거렸던 마음이 오히려 안정이 됐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그녀를 향한 나의 첫 마디는 "헐~!"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내 첫 마디의 뜻을 알 수 있으리라. 여배우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수수한 그녀 모습이 놀랍고도 좋았다.

가장 기초적인 '은교'의 주연을 따낸 계기부터 질문에 들어갔다. 다른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됐지만 어떻게 해서 '은교'와 인연을 맺게 됐는지가 얘기를 풀어나가는 첫 실마리가 될 것 같았다.

"사실 오디션이 있었는지도 몰랐어요. 오디션이 모두 진행된 시점에서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선배인 영화 스태프 한 분이 지금 제 소속사 대표님께 추천을 해달라고 했고 결국 추천을 받아 그 스태프 분을 만나러 가게 됐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그저 학교 선배인 스태프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만 알았지, 오디션을 보고 배역을 따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단 얘기다.

"스태프 분을 만나러 간 날이 (박)해일 오빠의 노인 분장 테스트를 하던 날이었어요. 한참을 기다리다가 감독님께서 직접 보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듣고 적지 않게 당황했어요. 소설 '은교'를 보긴 했지만 아직 학생이고 학교 교칙상 외부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오디션을 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오디션 준비도 되지 않았던 셈이다.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것이어서 신기하기만 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정지우 감독과 첫 만남도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던 듯 하다.

"감독님, 조감독님과 셋이서 작품 얘기는 안하고 수다만 떨다 왔어요. 작품 얘기는 하지 않었어요. 그저 감독님께서 '은교 책 읽어봤다면서요? 작품 속에서 은교, 이해 되나요'라고만 물어보셨죠. 그리고 제 자란 환경 같은 것 여쭤보셨고 그 다음엔 독백 하나 준비해서 다음날 정오까지 사무실로 오라고 하시더군요"

사무실로 와서 독백 하나만 하라는 것이 진짜 '오디션'이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녀는 오디션의 '오'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독백 준비가 엄청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지금 인터뷰하는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겠구나 생각했죠. 독백을 준비해서 사무실에 갔는데 영화 관계자 분들이 모두 모여있는거예요. 오디션이었던 거죠. 아니, 오디션보다 더 컸던 자리였던 것 같아요. 영화사 대표, 투자사 관계자 등 9명이나 계셨죠. 저 혼자만의 오디션이었어요"

정지우 감독이 김고은과 첫 만남에서 뭔가를 느꼈기 때문에 '대반전'의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신인급 배우의 '성공 스토리'에 종종 나오는 레퍼토리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얘기를 정리하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깜짝 놀라며 말한다.

"앗, 거미다. 거미"

응? 웬 거미?

OBS플러스 박상현 기자 tankpark@obs.co.kr

<2편에 계속>

(사진=권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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