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S플러스 이예지 기자] '범죄소년' 이정현, 실제로 만나보니 - 2000년 뉴밀레니엄으로 안팍이 시끄러웠을 무렵, 텔레비전 속에서 새끼손가락에 마이크를 달고 휘황찬란하게 움직여대던 그녀를 기억하는가.

붉은 옷을 입고 무대 곳곳을 누비며 누구보다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었던 이정현. 그는 지금처럼 대중문화가 활성화되기 전부터 우리나라 문화예술을 선도하고 있었다. "설마했던 니가 나를 떠나버렸어"라는 가사가 온 동네방네 울려퍼졌을 정도니 그 열풍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작은 거인으로 불리우던 그녀가 영화 '범죄소년'(감독 강이관, 배급 타임스토리)으로 돌아왔다고 하니 필자로써는 굉장히 반가운 상황. 내가 자라났던 그 시절 우상으로 군림했던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설레일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마주앉은 이정현은 생각만큼이나 작았다. 만인이 부러워하는 소두를 가진 것도 모자라 손도, 발도, 키도 작았다. 심지어 목소리까지 작았으니, 이런 그녀에게서 어떻게 그정도의 파워가 나왔을지 상상이 불가할 정도. '작은 거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위대한 창시자'가 궁금해졌다.

# 소년들의 우상에서 범죄소년의 엄마로.

사실 이정현을 만나기 전 서울보호관찰소에서 열린 '범죄소년'의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던 필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 시절 우상이었던 이정현을 알아보는 학생들이 없었던 것. 그녀를 두고 "저 아줌마는 누구야?"라는 학생의 물음에 필자는 "그렇게 말할 분이 아니다"라고 말해줄 수 밖에.

"서운하냐고요? 전혀요. 저는 혼자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도 가끔 알아봐주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서운하고 그런건 전혀 없어요. 오히려 밖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서 편한걸요"

이정현은 소위 말하는 요즘 친구들이 알아보지 않기 때문에 얻는 이익도 많다고 했다. 민낯으로 택시를 타도 불편하지 않고, 변장없이 길을 걸어도 편한 것이 그것의 장점. 비록 영화 속에서 미혼모 역할을 맡았지만 누구에게나 주목받았던 과거 그 시절보다 즐겁고 행복하다고.

"항상 연기에 목말라 있었어요. 준비는 늘 되어있었는데 좋은 작품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미혼모 역할.. 처음에는 싫었죠. 근데요. 강이관 감독님이 주신 다큐멘터리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여배우들이 꺼리는 역할 1순위로 꼽히는 미혼모 역할, 게다가 노개런티란다. 누구라도 캐스팅을 고사할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미혼모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알려야겠다는 일종의 책임의식이 그를 카메라 앞으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박찬욱 감독님의 '파란만장'에 출연하면서 '범죄소년'에도 출연할 수 있게 됐고, 또 다음 작품에도 캐스팅됐어요. 하하. 너무 행복한 일이죠" 미혼모 역할이면 어떠하랴, 그는 연기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 엄마와 배우 사이에서.

극중 엄마와 아들로 호흡을 맞췄던 서영주 군과의 일화도 재미있다. "엄마"라고 부르는 서영주 군에게 "하지마"라고 했다는 것. 연기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양보(?)는 해줄 법도 한데 이정현은 극중 아들 서영주 군에게 '엄마'라는 호칭을 불허했다.

"영주 군이 혹독한 드라마 현장에서 살아남은 아역배우거든요. 훈련이 잘 되어있다고 해야할까요? 매일 밤샘 촬영에 추위와 싸워야하는데도 불평하나 없더라고요. 오히려 내가 민망할 정도로 잘해줬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서영주 군의 연기는 모두 강이관 감독의 진두지휘 아래 탄생했다. 강이관 감독은 감정을 이끌어내야하는 장면, 그리고 아역배우들끼리 호흡을 맞추는 장면에서도 특유의 세심함을 발휘하며 그들을 이끌었다.

이정현보다 먼저 만났던 강이관 감독은 이정현을 두고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 배우"라고 정의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그의 평가. 이같은 강 감독의 말을 전하자 이정현은 '꺄르르' 웃으며 손사레를 친다.

"현장에서 저희를 너무 고생시켜서.. 미안해서 그런걸꺼에요.하하. 정말 너무 추웠고, 너무 졸렸거든요. 원래 3달 촬영 분량이었는데 1달 반만에 찍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고생이었다니까요. 하하"

# 자라나는 아이돌을 보며.

이정현이 여신으로 군림하던 그 시절, 요정으로 불리우는 여가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매니저들에 의해 관리됐다. 연애 금지, 외출 금지, 심지어는 매니저 외에 다른 사람과의 대화까지 금지되었을 정도니 생각만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 지옥같은 생활을 견뎌낸 이정현은 요즘 아이돌들이 부러울수밖에.

"'와' 활동 할때는요. 쉬는 날이어도 쉬지 못했어요. 매니저들이 밖에서 잠복근무를 했거든요. 내가 나가는지 안나가는지를 감시하는거죠. 그런것들에 완전 질려버렸어요"

때문에 오랜만에 돌아온 영화 현장과 가요 무대는 그녀에게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한다. 낯설지만 새로운 것들이 그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는 것. 영화 현장에서 바로 편집이 가능한 요즘 시스템을 접하고는 일명 '멘붕' 상태에 이르기도 했었다고.

"가요는.. 유행가가 없어졌다는게 아쉬워요. 아이돌 그룹도 너무 많고요. 음악방송을 하러가면 아이돌 멤버가 인사를 하러 오는데 한 번 보고는 이름과 얼굴을 외울 수가 없어요"

이정현은 그 시절, 연애를 해보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고 했다. "여느 커플들처럼 영화도 보고, 맛집도 가고.. 이런 것들.. 언제쯤 해볼 수 있죠?"

(사진=권희정 기자)

OBS플러스 이예지 기자 eyejida@o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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