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오늘 탄생한 124위 복자 가운데는 경기도와 인천 출신 복자가 23명에 달합니다.
대부분 평민출신으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아낌없이 던졌습니다.
그 발자취를 권현 기자가 조명해 봤습니다.

【리포트】

200여년 가까이 존재를 알 수 없었던 6대조 할아버지 윤유오 야고보.

이번 시복미사 124위 복자 대상에 오른 윤 야고보 6대손인 윤상호씨는 매일매일 족보를 보고 또 보면서 조상의 숭고한 희생을 기립니다.

신유박해때인 1801년 4월27일 경기도 양근에서 참수된 윤 야고보는 봉분도 없는 묘에서 197년을 머물다 비로소 족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팔순을 훌쩍 넘긴 손자는 조상이 복자 반열에 오른다는 영광에 앞서, 모진 고문과 형벌에도 배교를 거부했던 젊디젊은 20대 할아버지의 처절한 순교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싱크】윤상호/윤유오 야고보 6대손
저희가 본받지 못하고, 후손이라면서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양심의 가책이 됐었죠. 그래서 어디에 가서 저는 순교자의 후손이라는
얘기를 안 합니다. 저희들은 (조상님처럼)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까요."

그나마 후손이 확인된 윤 야고보에 비해 대부분의 복자들은 대가 끊긴 경우가 많습니다.

윤 야고보의 친형이면서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조선에 최초로 불러들인 밀사 윤유일 바오로.

사촌인 윤점혜 아가다와 운혜 자매 등 당시 윤씨 일가는 사위와 며느리까지,

모든 가족이 고초를 겪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현재까지 아무런 자취도 남질 않았습니다.

경기도 이천의 양지바른 야산에 자리잡은 어농성지에는 이처럼 선교에 목숨을 바친 윤씨 가문을 비롯해, 순교자 17명의 올곧은 삶이 고스란히 묻혀 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가 묻힌 이곳 어농성지를 비롯해 경기 지역에서만 이번 시복미사에 21명의 복자들이 포함됐습니다.

이처럼 많은 순교자들이 시복 대상자가 된 건 성지 지킴이 김태진 신부 등 경기지역 사제들의 끊임없는 의지와 열정이 한몫을 했습니다.

【싱크】김태진/ 어농성지 신부
"자유와 평등의 사상과 국가 발전을 위한 그런 서양문물의
도입을 힘썼던 사람들이 (경기도) 양평, 여주, 광주, 이천에
많았기 때문에, 여기서 순교자가 많이 난 것입니다."

기해박해에 희생된 심조이 바르바라와 이안나 복녀 등 인천출신 순교자 2위도 복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특히 이번에 복자로 추대된 경기 인천 지역 순교자들 상당수는 사제들이나 양반 출신이 아닌 평민들입니다.

【싱크】김태진 신부
"하느님 아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것,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한 국가 사랑입니다."

목숨을 버리고 신앙을 지켜 마침내 복자가 된 경인지역 순교자들.

한국의 가톨릭이 숭고한 풀뿌리에서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값진 희생입니다.

OBS뉴스 권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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