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양심’
- 김대중 전대통령이 남긴 것은?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85년간에 걸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3개월도 채되지 않은 시점에 국민들은 또 한 분의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낸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 인동초 등 그를 지칭하는 별명이 의미하듯 수차례 죽을 고비와 고난을 넘긴 김대중은, 1924년 전라남도 목포 앞바다에서 뱃길로 2시간 거리인, 후광리 작은마을에서 농어민 아버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작문과 역사 성적이 뛰어났으며, 고향을 무척 사랑한 청년이었다. 목포상고를 졸업한 후 선박회사에서 해운업을 하던 그는 목포일보사 사장을 역임하고, 1954년 목포에서 무소속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그후 민주당 전당 대회를 기점으로 민주당과 인연을 맺은 그는 강원도 인제에 출마해 연거푸 두 차례 낙선을 맛보았고, 조강지처인 차용애의 사망으로 힘겨운 정치 초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는 숱한 좌절 끝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군사쿠데타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정치규제에 묶이면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에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으로 등장한다. 이후 피랍, 투옥, 가택연금, 사형선고, 정치적 망명과 같은 고난과 시련을 거치는 동안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된 김대중은 3번의 실패를 딛고 97년 대선에 당선,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은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수평적 정권 교체를 성사시킴으로써 민주세력이 처음으로 집권하는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인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의  집권기에 일군 여러 업적 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본격적인 남북화해의 길을 텄다는 점이다. 햇볕정책,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개발,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성명 등이 바로 그 결과들이다. 특히 남북이 분단과 전쟁의 경험을 겪고 이후 적대적 대치를 계속해왔던 상황에서 이 같은 화해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그의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인권과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은 금융, 기업, 노동, 공공 4대분야에도 일대 개혁을 실행함으로써 2001년 8월, 예상보다 3년을 앞당겨 IMF차입금을 전액 상환함으로써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일생을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통일의 길에 바친 김대중 대통령... 그는 숱한 투옥, 망명, 연금을 당했고 늘 죽음의 위험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는 불의에 꺾이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독재권력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OBS 시사토론 우리시대>는 민주주의와 인권, 언론자유와 민족의 평화통일을 추구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과 정치역정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무엇이고,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에 이은 김대통령의 사후, 우리 정국은 어디로 갈 것인지 정치, 사회경제, 남북문제 전문가와 함께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