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비하인드] 인권 예산 2만 원…인권 등돌린 두테르테

2017-09-13     송은미

【앵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인권을 우습게 아는 건 하루 이틀일이 아니죠.

그러다 보니 국가 인권위원회와의 사이도 좋지 않은데요,

이번에는 하원에서 내년도 인권위 예산을 1천 페소, 우리 돈으로 약 2만 원으로 책정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월드 비하인드입니다.

【아나운서】

필리핀 하원에서 내년도 국가 인권위원회 예산을 1천 페소, 우리 돈으로 약 2만 2천 원으로 삭감하기로 의결했습니다.

[에릭 싱손 / 하원 부의장 : 찬성 119표, 반대 32표로 예산 삭감 발의안이 통과됐습니다.]

원래 정부가 편성한 예산은 우리 돈으로 약 150억 원으로, 이것도 올해보다 9.5% 삭감된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원이 사실상 전액 삭감 결정을 내리며 인권위를 무력화시킨 겁니다.

하원의장은 인권위가 범죄자 권리만 보호한다며 그들로부터 예산을 받으라고 빈정댔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인권위가 자초한 일이라고 두둔했습니다.

인권위와 두테르테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불편한 사이였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인권 경시 성향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약과의 전쟁.

두테르테는 취임하자마자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마약사범 격퇴에 열을 올렸습니다.

문제는 경찰에게 즉결 처분권을 주면서 무고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겁니다.

지난해 6월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래 필리핀에서는 3천 800명 이상의 마약 용의자가 경찰에 사살됐고, 이 중에는 미성년자도 54명이나 됩니다.

이 중에는 경찰의 무리한 작전 수행이나 잘못 쏜 총에 맞아 죽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어윈 에르페 / 공안 부검전문의 : (피해자의) 시신에서 그가 저항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등과 뒤통수, 왼쪽 귀 등 세 군데의 총상 외에 다른 부상은 없습니다.]

IS 소탕을 이유로 계엄령이 내려진 민다나오섬에서도 인권은 짓밟히고 있습니다.

반군 토벌작전이 4개월째 진행되면서 약 200명의 민간이 행방불명된 겁니다.

이때마다 인권위는 제동을 걸었습니다.

무고한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민다나오섬 마라위시에 대한 공습 중단을 요구하고, 마약 사범에 대한 작전을 수행하는 경찰에 대해서는 관련 수칙과 법규를 지켰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인권위 폐지까지 경고하며 경찰을 감쌌습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 필리핀 대통령 : (마약사범 용의자가 저항한다면) 군경은 이런 멍청이들을 살해해도 됩니다.]

따라서 이번 하원의 결정은 인권위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두테르테의 의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테르테의 행보는 인권 무시를 이어 독재화로의 수순을 밟고 있는 듯 보입니다.

두테르테는 독재 정치를 펴다 1986년 민중 봉기로 물러난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 대해 시신을 영웅묘지로 이장하고 탄생 100주년을 특별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추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수만 명의 고문과 살해 피해자를 낸 마르코스에 대한 미화 움직임에, 시민단체들은 우려를 감추지 못합니다.

[틴 돔돔 / 反 마르코스 시위 참여자 : 故 마르코스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마십시오. 살인을 멈추세요. 가난한 사람들을 살해한다고
마약과의 전쟁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독재자를 쫓아내고 민주화를 이룬지 겨우 30여 년.

인권 의식과 민주화가 성숙하기도 전에, 제2의 마르코스를 만나는 건 아닐지 필리핀 국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

월드 비하인드입니다.

<영상편집: 용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