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바람바람' 이성민] 한계를 모르는 배우 이성민

2018-04-13     김지원

[OBS플러스=김지원 기자] 배우 이성민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스스로도 확신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안 어울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역할이었음에도 그는 완벽한 '바람의 신'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물론 여기에는 조금의 분장의 힘조차 보태지지 않았다. 예상을 깨고 기존 이미지와 역할 사이의 간극을 없애버린 것은 오롯이 이성민의 연기력이었다.

'바람바람바람'은 20년 경력을 자랑하는 바람의 전설 '석근'과 뒤늦게 바람의 세계에 입문한 '봉수', SNS와 사랑에 빠진 그의 아내 '미영' 앞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제니'가 나타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꼬이게 되는 상황을 그린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다.

이성민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바람을 들키지 않은 바람의 전설 '석근' 역을 맡아 특유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능청스럽고 미워할 수 없는 마성의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극 중 '석근'은 젠틀한 택시 기사부터 뻔뻔함으로 무장한 남편, 술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폐인의 모습까지 감정의 폭과 장면 간의 이미지 차이가 가장 큰 인물이다. "쉽지 않은 역할인 만큼 '석근'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오직 이성민뿐"이라는 이병헌 감독의 생각은 적중했다. 극 중 이성민은 '석근' 그 자체였다.

싱크로율 200%의 완벽한 소화력을 자랑하며 '바람바람바람'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 이성민은 자신을 향한 칭찬의 말에 "주어진 대본대로 연기했을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성민은 "내가 연기했기 때문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석근' 자체가 매력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난 배우로서 '석근'이 극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길만 열어줬을 뿐"이라며 웃었다.

▶ 다음은 이성민과의 일문일답

- 영화 어떻게 봤나
어른들의 멜로 이야기지만 귀엽고 상큼해서 잘 봤다. 소재가 좀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경쾌하고 담백하게 표현이 잘 됐더라. 이병헌 감독의 연출력이 그런 우려를 완충시켜줘서 다행이었다.

원래 '코미디'라는 것이 사회적 문제나 인간의 어두운 측면들을 끄집어내서 웃음으로 털어내는 장르다. 우리 영화가 만약 리얼리티를 살린 막장 영화였다면 관객들도 부담스럽고 난해했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영화는 충분히 웃고 즐기면서 털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경쾌한 웃음으로 통해 예민한 소재를 다뤄내는 코미디 장르의 장점을 잘 살려낸 영화라고 생각. 

- 왜 '어른을 위한' 영화인가
우리 영화는 결혼 여부에 따라 이해, 공감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난다. 대사 자체도 결혼한 지 오래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른 주연 배우들도 극 중 '결혼한 아내랑 키스해?'라는 대사를 이해 못 하겠다고 할 정도. 아무래도 논리보다는 정서적으로 이해해야 훨씬 재밌다.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라는 것이다. 

- 가족들 반응 어땠나
다들 '재밌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아내는 '더 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특히 "마지막 엔딩 장면에 등장하는 그 아이는 누구 애야?"라고 물어보는데 기혼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웃음)

- 기존 이미지와 다소 차이가 있다
나도 동감한다. 스스로도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병헌 감독은 일반 사람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난 외모에 변화라도 줘야 할까 생각해서 구레나룻을 이용해서 느끼한 이미지를 주려고 했는데 이병헌 감독은 '그대로 가자'고 했다.

사실 이병헌 감독이 날 캐스팅한 이유는 '석근'이 바람보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달라지는 인물 서사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석근'은 바람의 신 캐릭터지만 바람을 피우는 것보다도 아내가 죽고 난 후부터 변화하고 극복해나가는 장면이 더 중요하다. 만약 초반 이미지 때문에 분장으로 겉모습을 느끼하게 만들었다면 캐릭터는 더 강렬했겠지만 이후에 극복하는 것이 더 힘들어졌을 것. 그리고 평범한 외모 덕에 진정한 '고수' 처럼 보이기도 하지 않나.

- '석근'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석근'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어필하는 성격이다. 반면 난 스스로를 뽐내는 타입이 아닌데 '석근'은 내게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관심이 갔고 매력을 느꼈다. 또 큰일을 겪고 나서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밝게 살아가면서 가족 간의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내는 모습도 좋았다.

- 캐릭터의 매력을 살려내는 비결이 있다면
내가 '석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주어진 대본과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나리오에 '석근'이 구체적으로 잘 묘사가 돼 있었고 그 자체가 매력적인 캐릭터였기에 가능했다. 난 그저 배우로서 '석근'이 밖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 '석근'에게 '롤러코스터'란
석근은 롤러코스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동안 만났던 여자들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하기도 하고 그 자체로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위태롭고 굴곡진 인생과도 닮았다. 그런데 영화 엔딩에서는 석근이 롤러코스터를 굉장히 덤덤하게 타는 모습이 나온다. 어쩌면 살면서 추구해왔던 '짜릿함'을 버리고 이를 극복하며 의연해진 석근의 인생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 표정 연기가 유독 돋보인다
과장된 표정 연기나 스냅스틱이 많아서 일종의 연극을 보는 느낌도 있다. 이 부분이 이병헌 감독의 특징인 것 같다. 처음엔 나도 다른 배우들도 조금 당황했었다. '이거 뭐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엔 다들 적응하고 같이 웃고 즐기고 있더라. 

이병헌 감독은 영화에서처럼 평소에도 다소 엉뚱한 면이 있다. 그런데 마냥 장난꾸러기 같다가도 촬영할 때 모습을 보면 '천재구나' 싶기도 하다. 한 장면을 촬영하면서도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면과 연결해보면서 어떻게 연출할 수 있을까 상상한다. 완성작 보고 '역시'란 생각이 들었다.

- 애드립 있었나
대사에서는 애드립이 거의 없었고 작은 행동 정도만 했다. 워낙 이병헌 감독이 적당한 타이밍에 딱 맞는 대사를 넣어놔서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이병헌 감독은 자신만의 영화 세계가 딱 구축돼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감독 스타일에 맞췄다. 

- 신하균이랑 네 번째 호흡이다
횟수로는 네 번째인데 이제서야 겨우 친해졌다. 둘 다 낯을 좀 가리는 데다 상대가 먼저 말을 안 붙이면 먼저 말을 안 거는 성격들이다. 그래서 친해지는 데 오래 걸렸다. 그래도 이번 작품에서는 둘이 호흡하는 장면도 많았고 제주도 로케이션 촬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 로케이션 촬영에 불편함은 없었나
불편함은 없었고 오히려 장점이 많았다. 제주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매일 붙어있다 보니 촬영장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이병헌 감독을 포함해 네 명의 주연 배우가 서로 너무 친해서 마치 가족 같았다. 내가 첫째고 둘째가 신하균. 공부는 잘하는데 밥 혼자 먹기 싫어하는 깍쟁이 오빠 타입. 반대로 셋째 송지효는 온갖 집안 살림 다 하는 타입이어서 계속 신하균을 챙겨줬다. 또 이엘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막내 같은 느낌이었다.

- 끝으로 올해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작년에 바쁘게 활동을 했더니 올해 개봉하는 영화들이 많다. '바람바람바람'을 포함해서 개봉을 앞둔 모든 영화들이 다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 그뿐이다.

(사진=NEW)

OBS플러스 김지원 기자 zoz95@o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