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 유아인] 솔직·당당함이 매력적인 배우

2018-12-11     김지원

[OBS플러스=김지원 기자] 유아인은 언제나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멋진 배우다. 그런 유아인의 모습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 속 윤정학과 똑 닮아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IMF까지 딱 일주일만을 남긴 상황 속에서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까지,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유아인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사표를 던진 금융맨 '윤정학' 역을 맡았다. 모두가 경제 성장을 낙관하던 그때, 실물 경제의 심상치 않은 징후를 포착하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던진 윤정학은 개인 투자자들을 모아 인생을 바꿀 베팅을 시작한다. 

윤정학은 타인에게 쉽지 않은 결정을 유도하고 종용하는 캐릭터인 만큼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과 에너지를 가진 인물이어야 했다. 모두가 입을 다물 때에도 자신만큼은 목소리를 내어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하는 소신 있는 배우, 매 작품 넘치는 에너지로 주어진 배역 그 이상을 표현해내는 배우 유아인처럼 윤정학에 어울리는 배우가 또 어디 있을까.

'국가부도의 날' 속 정학은 처음부터 유아인을 위해 만들어진 옷처럼 딱 들어맞았다. 부딪히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솔직하고 당당한 행보로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가는 배우 유아인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다음은 유아인과의 일문일답

- 영화 어떻게 봤나

만족스러웠다. 상업성, 예술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화는 결국엔 정해진 상황 속에서 얼마나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가에 달려있다. 실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이 정도의 긴장감을 만들어 내다니 감독님과 스태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영화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다양한 입장을 그린다. 각각의 인물들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 지나친 신파, 사회고발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깔끔하고 담백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 담긴 감정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전체적으로 과하지 않게 조화를 잘 이룬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 시나리오 받고 어땠나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영화 '버닝'을 촬영하고 있었다. 원래 한 작품을 촬영하고 있을 때는 다른 시나리오는 읽지도 않는 편인데 평소 친분이 있던 감독님의 추천이 있어서 읽어보게 됐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는 곧바로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나 혼자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부담감을 나눠 가질 수 있는 다른 주연 캐릭터들이 있었고 그 역할을 하는 배우가 김혜수, 허준호 선배님이셨다. 이런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다시 올 것 같진 않았다. 

- '빅쇼트'와 유사한데 혹시 참고한 부분이 있나

원작이 있는 작품을 할 때 원래 원작을 잘 안 보는 편이다. 원작은 원작일 뿐이고 굳이 모방하려 하지 않아도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레퍼런스들이 있다. 나는 단순히 '표현하는 사람'이지만 나의 표현에는 내 생각과 비평이 그대로 녹아나기 마련이다.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 욕구, 또는 혼란에서 표현 방식을 빌어온다. 그래야만 더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 '윤정학' 캐릭터,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현실적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 딱 그 모습으로 그려지길 원했는데 그렇게 표현해주니 감사하다. 정학은 얄밉고 정의롭지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인물이다. '정학'의 선택이 관객들에게 현실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길 바랐다.

IMF로 인해 상처를 받고 여전히 그 불행이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때문에 우리 영화는 단순한 상업성보다 국민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 감독님께서 정말 큰 신뢰를 내게 주셨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좇는 정학의 선택이 국민의 아픔까지 건드리는 일은 없어야 했다. 물론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또 누군가는 우리 영화에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가치를 성취했다고 생각한다.

- 연기하면서 감정 덜어내려고 했나 이입하려고 했나

최대한 감정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정학'은 선견지명이 있고 세상을 보든 다른 시각, 본질을 꿰뚫는 눈을 가진 친구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상황, 뉴스, 단순한 자료만을 보고 미래를 예견하는 영민한 친구다. 그 모습을 에너지로서 표현하고자 했다. 쉽게 믿기 힘들고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투자자를 유치해내는 것은 오로지 정학이 가진 에너지의 힘이다. 내가 가진 확신과 믿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래야 보는 사람도 나를 믿고 따라올 수 있으니까. 정학이 가진 입체적인 성격과 인간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도 '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욕망을 추구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정학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매 순간순간마다 감정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 정학이 시청자 입장을 대변해주는 듯

정학은 영화를 이해시키는 것보다 관객들이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주는 역할을 한다. 진지함, 진중함을 덜어내 흥미를 돋우고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들이는 인물적인 장치로서 줄기 역할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 역할을 만족시켰다면 내가 이 작품의 한 요소로서 해야 할 기능을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다른 배우들과 호흡은 어땠나

단 하나의 이유가 한 작품을 선택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조금 달랐다. IMF를 소재로 한 상업영화를 끌고 가는 중심에 김혜수 배우가 있다면. 함께 호흡하며 내게 주셨던 에너지와 느낌, 성실함이 큰 본보기가 됐고 영감이 됐다. 함께한 것이 영광스럽고 감사하다는 말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게 만드는 선배다. 

또 조우진은 아플 정도로 예리하고 날카로운 배우다. 인상적인 선명함, 대단한 표현력을 가졌다. 배우로서 가지는 힘과 존재감이 대단하다. 무조건 힘이 세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닌데 그 힘의 세기가 참 적절하다. 이런 배우들과 함께 한 작품에서 호흡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 '윤정학 트리오'의 코믹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우리 세 사람이 워낙 유머러스한 캐릭터여서 걱정이 조금 있었다. 가장 우려했던 건 영화의 흐름 자체가 워낙 진지하고 진중하다 보니 우리 세 사람이 주는 가벼움이 흐름에 누가 될까 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다행히 작품 속에 잘 녹아든 것 같았다. 두 선배님 덕에 외롭지 않고 재밌게 촬영할 수 있었다. 함께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즐거운 과정이 됐다.

- 다소 변덕스러운 캐릭터인데

'정학'은 단순히 악역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인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선과 악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듯이 정학은 다양한 순간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정학을 악역이라고 가정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충분히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정학이 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나

특별한 전사가 설명되어 있지 않아서 혼자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것이 있다. 혹시 비슷한 상황으로 인해 가족들이 피해를 본 적이 있던 게 아닐까 하는 거였다. 이유 없이 욕망을 좇는 괴물이 된 것이 아니라 영화상에는 설명되지 않은 상처나 트라우마 있었을 것 같다. 극 중 갑수가 20년 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정학도 뭔가 가족적인 트라우마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냥 생기는 괴물은 없다는 생각으로 정학에게 접근했던 것 같다. 

- 대본에 없던 장면 있었나

영화 말미 시간이 흐르기 직전 마지막 정학의 모습이다. 혼자서 거리를 걷던 정학이 돌연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인데 대본에는 적혀있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그런 상황에 놓인 나 자신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어디 있는지 모를 나 자신의 하늘을 바라본다는 느낌을 담고 싶었다. 

- 구제금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구제금융에는 당연한 명과 암이 존재한다. 다른 방법이 과연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지는 모르는 것이다. 우리 영화는 구제금융에 대한 긍정이나 부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어야 했던 당시 사건의 내막,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더욱 충분한 정보전달이 필요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 그 과정에서 언론과 정치의 역할, 국민이 가져야 할 삶에 자세에 대해 환기한다. 훨씬 날카롭게 당시 정권을 비난하거나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작품들이 있지만 '국가부도의 날'은 명확한 신념이나 가치관을 제시하기보다 '저마다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에 관해 묻는 메시지보다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 SNS 글이 매번 화제가 되는데, 계속해서 글을 쓰는 이유가 있나

글은 내 표현방식 중 하나다. 말이나 행동이 즉각적인 표현이라면 글은 내 마음을 덜어내는 하나의 수단이다. 평소에도 떠오르는 것들은 메모를 많이 해두는 편이다. 그중 일부를 SNS를 통해 공유하는 것이다. 

- SNS 논란 이후 변한 것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젠더 갈등이 더이상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예민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런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 다양한 이슈를 의도적으로, 혹은 본의 아니게 항상 만들며 살아왔지만 단순히 한 인간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 대중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절대로 당연해질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이 왜 벌어지는지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픔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 자연스러워진 내일이 오기를 희망하면서 대중들의 평가에도 수용적이기 위해 노력한다. 

- 깨어있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것이 있다면

계속 시도하고 들여보려고 노력한다. 직업이나 돈보다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을 우선시할 때 더 깨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 좋은 표현을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생각한다. 설득력과 감동을 줄 수 있는 표현은 무엇일까. 아마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다양한 생각을 접하면서 이런 시각을 갖게 된 것 같다. 항상 좋은 것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시도와 도전이 중요한 거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느끼면서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나는 끝없이 실험적인 삶을 살아왔고 그 결과가 이것이라면 나름대로 만족한다. 

(사진=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OBS플러스 김지원 기자 zoz95@o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