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김고은 ②] "아버지와 고마우신 선생님 덕분에 배우 됐어요"

2012-05-04     박상현

[OBS플러스 박상현 기자] 테이블 밑을 보니 조그만 거미 한마리가 줄을 치고 있었다.

"거미 죽일까요? 거미 죽이면 안된다고 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거미 한마리에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거미의 형태가 싫어요. 나비도 싫어하고. 나비는 어렸을 때 '예쁘다'하고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는데 징그러운 모습에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그 이후 트라우마 때문에 나비를 싫어하게 됐죠. 하지만 매미는 좋아해요. 조용하다가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함께 울고 잠잠해지면 함께 잠잠해지는 것이 너무나 좋아요"

'왜 나풀나풀 나비를 싫어할까? 나비 예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 때쯤 소설과 영화에서 모두 나오는 한 대목이 생각났다.

'별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가 자네에게 가르쳐주었는지 모르지만 별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고 그냥 별일 뿐이네. 사랑하는 자에게 별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배고픈 자에게 별은 쌀로 보일 수도 있지 않겠나'

이 대목을 나비로 대입해보니 김고은이 나비를 싫어하는 이유도, 한여름 단잠을 깨우는 매미의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해가 됐다. 나비는 나비일 뿐이고 매미는 매미일 뿐이다.

인터뷰는 그녀의 연기 얘기로 이어졌다. 계원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이나 단편영화 같은 것은 찍었을테지만 복잡미묘한 주인공의 심리를 연기해야 하는 장편 영화는 그녀에게 분명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영화 찍으면서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제가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섬세하게 느껴야 하고 표현해야 하는 작업 자체가 어려웠어요. 은교라는 아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사람에 대한 이해나 포용하는 마음이 저보다 더 깊기 때문에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나 김고은은 이런 감정선을 훌륭하게 잘 따라갔고 섬세하게 잘 표현해냈다. 어떻게 해냈을까?

"감독님이나 동료 배우 모두 제가 신인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게끔 해주셨어요. 신인이 아닌 동료로 대해주셨죠. 그래서인지 주위에서 특별한 조언이나 어떻게 해야한다는 얘기는 전혀 없었어요. 다만 감독님이나 (박)해일 오빠, (김)무열 오빠들과 토론을 하면서 그 느낌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토론을 하면서 감정과 심리를 깨닫게 되고 이것이 좋은 연기로 이어진 것 같아요"

잘 알려진대로 그녀가 영화배우가 된 것은 부친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살았던 김고은은 '영화광'인 아버지 덕에 수많은 영화를 집에서 감상했다. 중국에 넘쳐나는 영화 DVD는 김고은이 '헐리우드 키드'가 되는데 밑거름이 됐다.

"아버지와 함께 수많은 영화를 봤어요. '쉬리'나 '8월의 크리스마스', '공동경비구역 JSA'같은 한국 영화를 모두 중국에서 봤어요. 또 '타이타닉'도 봤죠.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가 중요한 부분을 많이 일러주시기도 했고 어린 아이가 봐서는 안될 장면이 나오면 제 눈을 가려주시기도 하셨어요"

아버지와 함께 본 수많은 영화는 지금의 김고은을 만드는데 큰 자산이 됐을 것이다. '영화 조기교육'을 받았다고나 할까.

지금은 '괴물 신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그녀의 모습을 배우가 아닌 조감독 같은 스태프로도 볼 수도 있었다. 배우의 길이 너무나 힘들어 포기할 생각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가 어떻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됐을까.

"계원예고에 갔던 것은 연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어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어서 스태프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죠.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런 경험, 저런 경험을 모두 해야만 했고 선생님께서 '연기도 한 번 해봐'라고 하셔서 첫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어요. 첫 공연에서 대사가 많은 주연을 맡았죠. 실수없이 잘했지만 작품을 하면서 마음이 너무 부담되고 떨려서 평생 배우를 한다면 마음이 괴롭고 스트레스 받겠다 싶어 다시 영화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죠"

여기서 그냥 영화 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면 지금의 김고은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더 해보자는 선생님의 권유에 두번째 작품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첫 작품에 비해 너무나 작은 역할이었다.

"첫 작품에서는 주연이었는데 두번째는 너무나 작은 배역이어서 열심히 하지 않게 됐어요. 첫 작품때 내가 그렇게 못했나하는 자격지심도 들었죠. 연습때는 졸기만 했어요. 그 때 선생님께서 '내가 너를 잘못 봤구나'라고 꾸지람하신 것이 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어요. 다시 마음을 잡고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연구를 했어요. 결과는 성공이었죠. 연습할 때도 즐거웠고 공연 당일되니까 너무 설레는거예요. 공연 끝나고 나니까 마음이 벅차고 연기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 예뻐보였어요. 무대도 내려가기 싫더라고요"

김고은을 배우로 만들어준 '고마운 은사님'이 주지희 선생님이다. 공인이 아닌 선생님 성함을 밝혀도 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까르르 웃으며 대답한다.

"상관없지 않나요? 더 좋아하시겠죠. '야, 너 내 얘기 했더라?'하고"

OBS플러스 박상현 기자 tankpark@obs.co.kr

<3편에 계속>

(사진=권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