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마라토너…"나는 기테이 손 아닌 한국인 손기정"

2016-08-08     갈태웅

【앵커멘트】
올림픽 메달에 일희일비하는 요즘이지만,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했던 조선 청년은 금메달을 따고도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기테이 손'이 아닌, '손기정'으로 기록되길 바랐던 비운의 마라토너, 내일이면 '우승 80주년'이지만 그 염원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갈태웅 기자입니다.

【현장음】
"빰빠라~빰빰빰빰빠! 빠라빰빰빰빰빠~"

【리포트】
장중한 나팔소리와 함께 20대 까까머리 청년이 베를린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섭니다.

조선의 마라토너, 손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장내 아나운서는 결승선을 맨 먼저 통과한 그의 이름과 국적을 다르게 외쳤습니다.

【현장음】
"기테이 손! 일본!"

월계관이 수여되는 순간, 일본 국가가 흘러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시상식.

고개를 숙인 채 월계수 묘목으로 일장기를 가렸지만, 나라를 잃은 슬픔마저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대회 내내 '한국인'이라고 밝히고 다닌 사실까지 알려지자, 곧바로 일제의 추궁과 보복이 이어졌습니다.

【싱크】우승 직후 소감(1936년)
"이 승리는 결코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전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라고 하겠…. (크게 읽어!)"

그리고 80년이 흐른 지금, 다시 '마라토너 손기정'으로 돌아온 우리들의 영웅.

하지만, 세계는 여전히 그를 '일본인·기테이 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방 조국에서 열린 올림픽 성화주자로 뛰었고, 가슴에 태극기를 단 후배가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 선수를 꺾으며 금메달을 따는 모습까지 봤지만, 끝내 그 한만은 풀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80년 전, 2시간 29분 19초의 올림픽신기록 영광은 여전히 '슬픈 우승의 감격'으로 남아있습니다.

【인터뷰】이준승/고 손기정 선수 외손자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본인의 영광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한테 큰 의미가 있고…."

【클로징】갈태웅
"80년 전 조선 청년이 들었던 이 월계수는 어느덧 이만큼 자랐습니다. 그는 기테이 손이 아닌, 바로 손기정이었습니다."

OBS뉴스 갈태웅입니다.

< 영상취재: 신귀복 / 영상편집: 이종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