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S플러스=박혜영 기자] 이창동 감독이 '버닝'으로 돌아왔다. 

8년 만의 복귀작 '버닝'과 함께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하고 돌아온 이창동 감독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버닝은 다수의 현지 매체들로부터 경쟁작 중 최고라는 평을 받으며 강력한 황금종려상 수상 후보로 점쳐졌다. 비록 '버닝'은 기대와 달리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과 벌칸상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해외에서 인정받았다. 

이창동 감독은 매체와 인터뷰를 자주 하는 감독이 아니다. 언론의 얼굴을 많이 노출하는 직업이지만 사람들과 섞이는 게 힘들어 노출 빈도를 줄이려고 한다는 그의 말처럼 이창동 감독과 인터뷰를 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8년 만의 복귀작인 탓일까? 이창동 감독은 '버닝'의 대외 행사에 적극적으로 얼굴을 비쳤다. '칸'에서 돌아온 직후 '스타라이브'로 대중들과 만날 이창동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버닝'과 '칸'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 다음은 이창동과의 일문일답

- 오랜만에 칸에 다녀온 소감이 어떤가

사실 칸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 칸의 레드카펫이 주인공이다. 모든 레드카펫의 모델이다. 사실 레드카펫이 너무 싫다. 상징적으로도 싫고 감정적으로 싫다. 몸치가 춤추는 것처럼 불편하다. 걸어가면서 미소 짓는 게 힘들다. 

물론 전 세계 모든 매체가 모이는 곳이어서 영화 평가를 받는 데는 효과적인 곳이다. '버닝'은 호불호가 분명한 영화다. 나름의 개성이 있다는 뜻이다. 칸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런 영화다. 꼭 예술영화만 오는 게 아니다.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영화들이 모인다. 개성적인 영화라는 뜻은 그만큼 호불호가 있다는 뜻이다. 

'버닝'도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좋다고 해서 '이게 뭐지?' 했다. 감동받았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번처럼 네가 황금종려상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국내 반응은 또 완전 달랐다. 호불호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내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오래 생각해봐야 하는 숙제가 됐다.

사실 이 영화는 '종수'의 이야기다. 그러나 '종수'와 레드카펫은 다른 세계다. 오히려 '벤'의 화려한 세계와 더 닮았다. 이게 우리 영화의 운명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 수상이 불발되어 아쉽지 않은가

칸에서 평가를 좋게 받으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상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나한테 좋은 일 생기겠나' 생각도 했다. '버닝'이 황금 종려상 받으면 한국 영화에 자극도 되고 탄력도 얻는 계기가 됐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개봉 전부터 '칸'에서 상을 받나 안 받나에 모든 마케팅에 올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상을 못 받으면서 판 돈을 다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 '버닝'은 느끼는 영화라고 말씀하셨다. 관객 평이 엇갈리는데 제작자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영화다. 영화적 관습에서 벗어난 영화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질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종수'와 '해미', '벤' 모두 각각의 서사가 있다. 관객들도 각자 자기가 원하는 서사대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오히려 모호함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느꼈으면 좋겠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니고 우리가 믿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 이런 방식이 낯설기도 하겠지만 이런 눈으로 바라보는 영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모호함을 던진 이유는 무엇인가

제 세대는 세상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 세대다. 사회의 모순이 있지만 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없어졌다. 무언가 잘못됐는데 문제가 뭔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세상은 더 편리해지고 깔끔해지고 세련되어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점 왜소해지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 우리는 분노했으나 변한 게 없다. 그게 일종의 미스터리다. 분노의 대상이 없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이 있다. 우리 일상의 디테일들이 때때로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다른 끔찍한 무언가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텐션이다.

- 관객들에게 긍정적 혼란을 만들었다. 의도한 대로 됐다고 생각하나

혼란스러워하는 게 오히려 괜찮을 것 같다. 너무 분명하게 생각하면 안 맞는 부분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물론 일부러 수수께끼 퀴즈를 내듯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관객 반응을 시간을 내서 본 적이 없어 잘 알 수는 없으나 아직 발견되지 못한 것들도 많이 있을 것 같다.

- 유아인과 스티븐 연은 어땠나

유아인은 전적으로 제가 요구하고 원하는 것을 잘 받아들였다. '종수' 역할을 보면 알겠지만 자신 감정조차 드러내지 않는 역할이기 때문에 배우로서는 어려운 역할이다. 배우는 퍼포먼스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퍼포먼스를 하지 않으면 자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종수'는 퍼포먼스가 없는 역할이다. 연기하기 힘들 수 있었을 텐데 '종수'라는 캐릭터가 잘살았다고 생각한다. 

'벤'이라는 인물은 모호함의 대상이기도 하고 미스테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연쇄 살인마라고 설명하면 쉽지만 그렇지도 않다. 이 인물이 가진 정서적 바탕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스티븐연은 처음부터 그걸 알더라. 관념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벤'이라는 인물의 공허함을 내면화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에서 그 인물 자체로 들어와줬다. 그 뭔지 모르는 미묘함은 스티븐 연이 아니었으면 만들어내기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해미'를 통해 그런 여성상이 아쉬울 수 있다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라고 되어있지만 이 영화를 청년의 이야기라고 카테고리화하는 게 거북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곳에서 시작하지만 여러 겹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의 이야기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종수'보다는 '해미'가 더 보통 청년들의 모습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감독을 맡은 다섯 편 중에 두 편이 여성이 주인공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향유해온 서사는 남성적인 서사였다. 제 개인적으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서사로 나아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 그동안 감독님의 영화와는 엔딩이 다르다. 감독님만의 생각이 있나

분명히 의도가 있다. 그냥 던져놓은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적 이미지로 받아들이길 바랐다. 그 이미지는 보시다시피 벌거벗은 몸으로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다. 제 나름대로 열어놓은 결말이다. 그게 뭔지 어떤 느낌인지를 관객에게 던져놓고 싶었다. 세상의 미스터리에 대한 무력함과 그래서 오히려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 현실이라면 그게 어디로 가는 것인지 어떻게 해소되고 표출되는지 던져놓고 싶었다. 

- 차기작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지 생각해봤나

잘 모르겠다. 8년 동안 쉬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대단히 많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고민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영화를 해야겠다는 의욕을 다시 되살리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제 나름의 숙제를 풀어야 한다. 

(사진=CGV 아트하우스)

OBS플러스 박혜영 기자 bark@o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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