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S플러스=김지원 기자] "그는 악마야"

영화 '독전'의 예고편에 등장하는 대사다. '악마'라고 불릴 정도의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말 못한 사연을 감추고 있는 듯한 묘한 눈빛이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과연 이 인물은 선한 사람일까, 악한 사람일까. 

'독전'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극이다. 류준열은 극 중 마약 제조 공장에 의문의 폭발사고가 발생하면서 엄마를 잃고 조직에까지 버림받은 조직원 '락'을 연기했다. 

'락'은 자신을 찾아온 형사 원호로부터 폭발사고의 원인을 듣고 수사 협조를 결심한다. 그는 원호를 도와 아시아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과 조직 간의 거래 계획을 알려주며 그와 함께 베일에 싸여 있는 조직의 실체를 파헤친다.

정보의 제공부터 실전 투입까지, '락'은 원호의 계획에 가장 큰 중심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이렇다 할 표정도 없이 단 한 번 목소리를 내는 일도 없이 그저 명령만을 따를 뿐이다.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락'은 12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내내 묘한 매력을 내뿜으며 선과 악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 한다. 

예측 불가능한 '락'의 행동을 쫓으며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것도 '독전'을 관람하는 또 하나의 재미다.  

눈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락'의 절제된 감정을 통해 전무후무한 인생 연기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는 류준열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다음은 류준열과의 일문일답 

- 영화 어떻게 봤나
원래 내 영화를 부끄럽고 창피해서 똑바로 못 보는 편이다. 이번에 영화 보고 나서도 '그럭저럭 봤다'고 대답해서 감독님이 서운해하셨을 정도. 다만 분명한 건 영화 보는 내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이 잘 됐다. 이런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는 사실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극의 연출 안에서 관객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호흡해 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 부분이 잘 돼서 좋았다. 

-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원래 영화를 선택할 때 시나리오를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편인데 특히 이번 영화는 무엇보다 대사가 너무 좋았다. 영화 전체를 돌이켜보면 '독전' 자체를 관통하는 대사들이 많다. 사실 평소 연기를 할 때 애드립을 넣거나 대사를 조금씩 바꾸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감독님 글솜씨가 워낙 좋아서 이번 촬영에서는 단 하나도 바꾼 부분이 없다. 

- 열린 결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결말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락에게는 더이상 누가 죽고 안 죽고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만약 그것이 중요했다면 진작 모두 정리를 하고 오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엔딩 장면에서는 원호가 락을 다시 찾아왔고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전부였다. 그 부분이 부각되어야만 우리 영화의 엔딩이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거기에만 집중했다. 

- 인물 설정과 캐릭터 해석 어떻게 했나  
원래는 캐릭터와 나의 닮은 부분을 찾아 확장하는 편이다. 그동안 맡았던 역할들은 다행히 모두 나와 닮은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락'의 경우 인물 전사가 전혀 없어서 감정을 통해 캐릭터를 해석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락과 좀 더 가까워졌던 것 같다. 감정적으로 락과 동화가 되고 감정 표현이 솔직해짐을 느꼈다. 평소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편인데 '독전'을 촬영하면서 유독 큰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꼈을 정도. 촬영하는 동안 현장에서 농담도 하고 웃고 지내다가도 돌아서면 금방 쓸쓸함과 허전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락을 연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새로운 재미를 주기도 했다.  

- '락'은 정말 악마였을까 
오연옥은 이 선생을 악마라고 말했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연옥도 이 선생과 가까운 사람 중 하나이지만 '락'이 누구인지 가장 잘 아는 인물은 원호였을 것이다. 락에게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는 것이 평생의 숙제였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여사의 아들로 자라났으니 아마 스스로가 가장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더부살이 삶도 이 선생을 숨기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자신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원호랑 손을 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락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보다도 이 선생에게 더 집중하는 원호를 보면서 '이 사람이라면 진짜 나를 찾아줄 것 같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 락이 원호에게 한 말은 모두 진심이었을까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원호와 함께하는 과정에서 이 사람이 나를 믿게 하고 싶다, 나도 이 사람을 믿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아마 마지막 노르웨이 장면에서도 락은 원호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두 사람이지만 마지막 총소리를 끝으로 그동안의 락의 감정, 인생의 숙제 등 모든 것이 해소됐다고 생각한다. 

- 대사가 굉장히 적다
안그래도 촬영 초반에 그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전에는 대부분 대사가 많거나 감정 표현이 격한 솔직한 성격들의 역할을 많이 맡았었다. 반면 락은 100% 감정 위주의 인물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다만 연기를 할 때 스스로 만족스러우면 감독님께서도 오케이 사인을 주셨고 내 감정이 흐트러지면 여지없이 NG 소리가 들렸다. 재밌다고 생각했다. 내가 감정에 얼마나 몰입했는지 다 보이는구나, 스크린에도 녹아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 호흡 속에서 '아, 우리 영화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구나' 하는 재미와 짜릿함이 있었다.  

- 설원 장면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노르웨이에서 촬영한 마지막 장면이 아주 마음에 든다. 사실 초반엔 동남아처럼 뜨거운 여름을 배경으로 설정했었는데 거의 모든 배우들이 극구 반대했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 오가는 감정들이 차가운 겨울을 배경으로 해야 잘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전체가 눈으로 덮힌 설원이 노르웨이밖에 없어서 비행기 값을 들여가면서까지 노르웨이로 이동해 촬영했는데 완성된 결과물을 보니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 염전 촬영 힘들지는 않았나 
아름답지만 고된 곳이다. 아무래도 태양 열기로 소금을 만드는 곳이기 때문에 정말 뜨겁다. 심지어 실제로 염전에서 일하는 분들도 낮에는 일을 하지 않으시더라. 그런데 우리는 그 뜨거운 여름에, 심지어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에도 촬영을 해야 했다. 사실 여름에 더운 것은 당연한 거니까 크게 불만은 없었다. 또 생각해보면 날씨가 도와준 부분도 많았다. 하늘이 도와준 덕분에 '독전' 속 좋은 장면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대선배들과 연기 호흡 어땠나 
그 전에는 선배들과 작품을 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고 벽을 쌓았던 것 같다. 스스로 지나치게 어려워했다. 하지만 '독전'에서는 그 벽을 허물고 선배들과 정말 가까이 지냈다. 특히 조진웅 선배와는 형, 동생처럼 지내면서 연기와 관련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실 동료 배우들끼리도 의견을 적극적으로 주고받기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 그런데 후배인 내가 먼저 질문이나 제안을 하면 조진웅 선배는 쿨하면서 따뜻하게 모두 받아주셨다. 너그럽고 여유 있게 동의도 해주고 또 함께 의견을 내줘서 정말 감사했다.

- 농아 남매와의 케미도 좋았다 
극 중 농아 남매로 출연했던 김동영, 이주영 배우에게 의지를 참 많이 했다. 근래 만났던 친구들 중 가장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두 사람 다 따뜻하고 연기에 대한 고민과 열정이 큰 친구들이다. 김동영 경우는 말수가 적은 편인데 한 마디 한 마디가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다. 또 이주영은 드라마를 한 번 같이 해본 사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영화에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함께 호흡했다.   

- 단기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편인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복은 인복이다. 스스로 재능은 없지만 인복은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응답하라 1988'의 신원호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작품 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따뜻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독전' 역시 좋은 반응과 좋은 얘기들이 많이 들려서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있었다(웃음). 

- 쉼 없이 작품을 하고 있다 
이것 역시 운이 좋아서다. '지치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긴 하지만 알아서 중간중간 재충전을 하고 있다. 일반 회사원들처럼 빨간 날에 꼬박꼬박 쉬지는 못해도 촬영이 없는 날엔 집에서 푹 쉬는 편이다. 또 작품 하는 과정이 너무 즐겁고 얻는 것이 많아서 힘든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 감독님, 동료 배우들과 함께 숨 쉬고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 지금처럼 좋은 작품 계속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싶고 그분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 꾸준히 연기를 하겠다는 의지인가 
어떤 특정한 목표나 의지가 있다기보다는 지금처럼 한 작품, 한 작품 해나가면서 활동할 건데 그런 부분에 스트레스 받지 말자는 생각이다. 그냥 즐겁게 연기하자는 거다. 지금처럼 계속 연기를 하고 작품을 찍다 보면 앞으로도 똑같이 배우로 계속 남아있게 되지 않을까. 

(사진=NEW) 

OBS플러스 김지원 기자 zoz95@o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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