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S플러스=김지원 기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한 힘을 가지지만 그 힘이 관객에게까지 전달되도록  유도하는 것은 주연 배우의 몫이다. 그리고 실화가 가진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을 갖춘 '실화 전문 배우'가 한 명 있다. 바로 황정민이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실화 바탕 첩보극이다. 

황정민은 극 중 암호명 '흑금성'의 북으로 간 스파이 '박석영' 역을 맡았다. 박석영은 육군 정보사 소령으로 복무 중 안기부의 스카우트로 북핵 실상 파악을 위해 북의 고위층으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는 인물로 임무를 위해 대북 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에 주재하는 북의 고위 인사 리명운에게 접근한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한 번, 실화라는 것에 두 번 충격을 받은 황정민은 이 멋진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고민도 없이 시나리오를 선택했다고.

보면서도 믿기 힘든 이 소설 같은 이야기는 윤종빈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황정민의 연기력을 만나 더욱 탄력을 받았다. 영화화된 흑금성의 이야기가 공개되자마자 관객들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입소문을 탄 '공작'은 개봉 8일째에는 300만, 12일 째에는 400만을 돌파하며 흥행작 반열에 올랐다.

스파이 흑금성의 실제 인물인 박채서 씨의 가족들까지 "극 중 박석영에서 남편(혹은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고 말할 정도로 역할에 푹 빠져든 황정민은 '공작' 흥행에 가장 큰 주역이었다. 마치 실제인 듯 리얼한 그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가 '실화' 이야기에 더욱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가진 에너지로 극에 완성도를 더하는 배우 황정민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다음은 황정민과의 일문일답

- 공작은 어떤 영화인가

'공작'은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첩보물에 대한 이미지나 환상을 완전히 다 깼다. 일반적인 첩보물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고 오히려 정치드라마적 성향이 강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정치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보는 사람마다 달리 보일 수 있는 것이 '공작'이다. 나는 크게 생각해서 남과 북의 우정이자 화합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시나리오를 처음 딱 받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실화라는 점이 가장 충격이었다. 나처럼 모르고 있던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이 이야기를 나만 알고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꼭 말해주고 싶었다. 

- 연기 쉽지 않았다던데

초반에 쉽게 생각했다가 뒤통수를 좀 맞았다. 감독님은 모든 대사나 장면들이 굉장히 다이나믹하면서도 액션 감이 느껴지길 원했다. 영화의 긴장감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그런데 이 '구강 액션'이라는 것이 말이 쉽지 실제로 해보니까 너무 어려웠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칼을 갈고 있는 상황이라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손 하나 올리는 것조차 의미 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좋은 경험이 됐다. 

- 영화의 긴장감과 에너지가 상당하다

글은 상당히 평면적이다. 시나리오에 적힌 내용을 배우들이 연기로 표현하면서 에너지가 생기는 거다. 대화하면서 오고 가는 긴장과 현장의 에너지들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긴장감들이 관객들에게도 느껴질까 고민을 많이 했다. '공작'에는 다른 영화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클로즈업이 많다. 감독님이 참 적절하게 잘 쓴 것 같다. 감독님의 좋은 편집력 덕분에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이 더욱 돋보였던 것 같다. 

- 어려운 만큼 재밌는 촬영이었을 듯

배우들끼리 '산을 넘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대사 난이도가 상당했다. 쾌감도 분명히 있었지만 자괴감도 동시에 느껴졌다. 내가 출연한 작품만 몇 개인데 이 정도밖에 안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북한 촬영은 어땠나

북한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락된 기간이 딱 3일이었다. 그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뽑아내야 했기 때문에 욕먹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를 단단히 했다. 하지만 막상 북한에 가서는 그곳의 분위기와 공간이 주는 위압감에 눌러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기에 눌리고 얼어붙어서 입이 안 떨어질 정도였다. 쉽지 않은 촬영이었다.

- 특히 힘들었던 장면이 있나

김정일과 대면했던 장면이 기억이 많이 남는다. 차렷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입만 움직인다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더라. 부동자세를 유지한 채 감정을 말과 눈으로만 표현해야 해서 정말 어려웠다. 밧줄로 꽁꽁 묶어놓은 듯 불편한 상태에서 말 안에 감정까지 담아야 하니 쉽지 않았다. 연습을 좀 더 제대로 할 걸 후회했다. 연습할 때부터 움직이지 않고 대사를 해야 했는데 너무 편한 자세로 했구나 생각했다. 

- 마지막 엔딩 장면이 인상적이다

두 사람이 재회해서 박석영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는 더는 울고 안 울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 장면을 위해서 내가 촬영 내내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한 거였구나 생각했다. 미친 듯이 고민하고 산을 넘어 정상에 선 기분이었다. 덕분에 오히려 엔딩은 정말 쉽고 편하게 촬영을 끝냈다.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끝나는 엔딩이다.

- 박채서 씨 실제로 만나보니 어땠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극을 연기할 때 그 실제 주인공을 직접 만나보는 것을 사실 좋아하진 않는다. 그로 인해 뭔가 특정한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그런 사람이 존재하고 이런 삶이 존재하지만 우린 스토리만을 모티브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잘 안 만나는데 이번엔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신념을 가졌길래 이 일을 택하고 행동할 수 있었을까. 그분이 자기 자신과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이 궁금했다. 어떤 신념이 있으면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는 걸까 알고 싶었다.

실제로 만난 박채서 씨는 정말 단단한 바위 혹은 벽 같은 느낌이었다. 눈을 읽을 수가 없었다. 저 내공은 뭘까 감탄스러웠다. 내가 이 분의 에너지와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관객들이 극 중 나를 봤을 때 이 느낌을 똑같이 받길 바랐다. 박석영이 가진 첩보원으로서의 신념과 나중에 느끼는 자괴감까지 감정들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 박채서 씨가 영화 보고 뭐라고 하던가

울컥해 하셨다. 잘 봤다고 얘기해주셨다. 특히 사모님이 제게 '영화 속 박석영에서 남편과 비슷한 얼굴을 봤다'고 말씀하셔서 정말 감사했다. 딸이 두 분 있는데 그분들도 그 얘길 하셨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가 황정민으로 인해 대중성을 띠게 됐다

그렇게 받아 들여준다면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사실 우리 영화가 대중적인 내용은 아니긴하다. 또 기존 첩보물의 상식적인 틀에서도 많이 벗어났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걱정도 많이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스토리를 극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지 않나. 낯선 영화이지만 대중들이 많이 좋아해주면 좋겠다.

- 정말 많은 작품을 했는데 매번 다른 연기를 보여준다

캐릭터마다 교묘하게 다르게 표현하기보다는 치밀한 고민 끝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색깔을 표현한다. 오로지 그 인물에만 집중한다. 인물과 스토리가 다르고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촬영에 임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나도 모르는 관성이 생기기도 하더라. 그럴 땐 솔직해지는 수밖에 없다. 상대 배우들과도 많이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호흡을 맞춰나간다. 특히 '공작'에서는 서로 힘든 부분을 공유했다. 어려운 촬영이었기 때문에. 기존 촬영과는 전혀 달랐고 학생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 연극을 다시 시작했던데 

연극 선배들 말 중에 '대사를 뼈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많은 연습량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화는 비교적 연습량이 많지 않다. 그러다 '공작' 찍으면서 내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해왔지만 아직 한참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연극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연극을 시작했고 확실히 연극을 하면서 내가 옛날에 어떻게 했었는지 많이 생각하게 됐다. '공작' 덕분에 배운 것이 많아서 다음 작품에서는 더 재밌고 열심히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 실화 전문 배우라는 별명이 있다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관객들에게 이런 이야기 있다는 것을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은 작품을 선택한다. 물론 영화화 과정에서 픽션으로 꾸며지는 내용도 생기지만 이야기 자체에서 매력을 느끼다보니 자연스럽게 실화 영화를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작품을 고를 땐 내가 관객들에게 책을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읽는다. 책을 읽을 때 책장을 넘기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재밌는 책들이 있지 않나. 내가 대본을 읽을 때 그런 느낌이 드는 대본을 고른다. 나만 혼자 읽기 아까운 느낌이 드는 대본을 선택하는 편이다. 

-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공작' 촬영이 어려웠어서 연극을 하면서 초심을 잡고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한 1년 정도 쉬고 있는데 잘 쉬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나를 되짚어보는 시간도 생겼다. 수많은 배우 중에서 주목을 받는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좋게 잘 쉬고 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OBS플러스 김지원 기자 zoz95@o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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