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S플러스=김지원 기자]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요? 저는 노를 저을 때가 아니라 지도를 펴고 방향을 살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영화 '범죄도시'로 단숨에 대세 반열에 오른 배우 진선규가 한 말이다. 연극계에서는  소위 '무대 위에서 놀 줄 아는 배우'로 잘 알려진 이름이었으나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이름 '진선규'는 지금은 나오지 않는 작품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이름이 됐다. 

그런 그에게 주변에서는 축하의 박수와 함께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조언을 많이 건넨다고 한다. 그러나 진선규는 "이럴 때일수록 더 천천히, 더 멀리 봐야 한다"면서 옅은 미소와 위에 선하면서도 진중한 눈빛을 띠었다. 실제로 그는 최근에도 시간 날 때마다 극단 후배들을 찾아가 조언을 건네고 대화를 시도하고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하면서 스스로에게 초심을 되새기고 있다고.

할리우드의 조니 뎁처럼, 출연하는 작품마다 모습이 180도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진선규는 영화 '극한 직업'의 마 형사를 통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 앞에 돌아왔다. '범죄도시' 속 '위성락'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다. 

극 중 진선규가 연기한 '마 형사'는 사건 해결보다 사고 치기가 먼저인 마약반의 트러블 메이커로 말 한마디로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마 형사'라는 전에 본 적 없는 개성 가득한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만든 건 틀림없는 진선규의 연기력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개봉 19일 만에 1,280만 관객 수 돌파라는 '역대 코미디 영화 흥행성적 1위'로 증명됐다. '위성락'부터 '마 형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무한 변신을 선보이는 진선규가 앞으로 보여줄 눈부신 활약이 기대된다.

▶ 다음은 진선규와의 일문일답

- 코미디 영화는 처음이었는데

맞다. 코미디 연극은 해본 적이 있지만 영화는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면서 너무 재미있게 촬영했다. 특히 누군가를 죽인다거나 때리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유쾌한 현장이었다. 

-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범죄도시' 이후 처음으로 받은 시나리오였다. 그때가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받고 난 직후였다. 이병헌 감독은 영화 '스물' 때부터 굉장한 팬이었기 때문에 이름만 보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또 류승룡, 이하늬, 이동휘 배우와 함께한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공명이 들어오고 5인방이 전부 뭉치니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 '마 형사' 캐릭터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

우선 시나리오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매력적이었다. 마 형사 뿐만 아니라 나를 비롯한 마약반 5인방, 서장님까지. 마 형사는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고뭉치이지만 결국 마 형사 덕에 창업을 시작하고 결국에는 대박이 터진다. 또 형사다움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보이다가도 결정적 순간에 형사로서 활약하는 반전적인 모습이 마 형사의 매력인 것 같다. 

- 배우들과는 원래 알던 사이였나

전혀 아니다. 내가 연예계에 들어온 지 딱 1년 차밖에 안됐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배우 중에서는 친한 사이가 거의 없다. 원래부터 같은 극단에 있던 배우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배우와 초면이라고 보면 된다.

- 배우들과 호흡은 어땠나

연기하면서 케미가 더 깊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나중의 일이고 우리 다섯 명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다 좋았다. 류승룡은 극 중 반장처럼 형으로서 우리 모두를 아우르고, 이하늬는 엄마처럼 식구들을 챙겼다. 나와 동휘, 명이는 삼 형제 같은 존재였다. 아웅다웅하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때부터 한 팀으로서 호흡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 마약반 5인방의 케미가 엄청나던데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연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친목을 위해 개인적인 술자리를 가진 것도 아닌데 첫 만남부터 그냥 모든 것이 딱딱 맞았다. 굉장히 빨리 친해졌고 별다른 조율 없이도 호흡이 완벽했다. 사실 '범죄도시'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두 작품 모두 좋은 팀을 만나게 되어 기분이 좋다. 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 '범죄도시'와 '극한직업'을 비교해본다면

일단 둘 다 팀워크 하나는 최고였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가장 크게는 느와르와 코미디로 장르가 다르다는 것 정도. '범죄도시' 때는 어떻게 하면 더 무섭게 죽일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반면 '극한 직업' 때는 하하 호호 웃기만 한 것 같다. 특별한 연습 없이도 각자 가진 성격이 너무 잘 맞아 떨어졌다. 

- 코미디 연기 하면서 주의했던 부분이 있나

사실 다른 사람을 웃긴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난 코미디 영화도 처음이었고 누군가를 웃기는 기술이 숙달되지 않은 사람이라. 류승룡은 코미디 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많고 이동휘, 이하늬 등 다른 배우들도 비슷한 작품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가며 잘 묻어가려고 했다. 코미디는 혼자 극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마디를 하면 누군가 옆에서 받아쳐 주는 과정에서 각자의 캐릭터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네 명을 믿고 따라가기만 했다. 

- 액션 연기 어렵지 않았나

워낙 몸을 움직이기를 좋아해서 어렵진 않았다. 이제는 조금 나이가 들었지만 적어도 내 또래와 비교할 때 액션에 자신감이 있는 편이다. 반전 아닌 반전이지만 내가 극 중 처음 마 '형사'로서 등장하는 장면은 보면서도 감탄이 나왔다. 다섯 명의 주특기들이 하나씩 공개될 때는 마치 영화가 히어로물로 급 전환된 느낌이었다. 

- 영화 속과 현실에서 모습이 전혀 다르다

그것이 내가 연기에 매력을 느끼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선규는 착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착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밴 탓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어색함을 느꼈다. 그러다 우연히 놀러 갔던 극단에서 연기 제안을 받고 평생 내본 적 없는 화를 냈는데 너무 좋은 거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 또 분장을 지우고 무대에서 내려온 나를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느낌도 짜릿하다. 조니 뎁처럼 역할마다 모습이 휙휙 바뀌는 배우가 되고 싶다. 

- 주변에서는 '너무 착해서 걱정된다'고 하던데

그런 말을 많이 듣긴 하는데 나는 걱정 안 한다. 내가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조금 같이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를 예민하게 알아채는 편이다. 조금 다른 느낌이 들거나 나와 결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바로 선을 긋는다. 오히려 겁이 많은 사람이 덜 다치지 않나. 내가 워낙 겁이 많아서 인간관계가 깊어지면 되레 조심하는 편이라 걱정 없다. 

- '범죄도시' 이후 1년이 지났는데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첫 시작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갑자기 올라오게 됐다. 주변에서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노를 젓기 전에 먼저 지도를 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해왔는지 다시 돌아보고 한 발 떨어져서 상황을 보려고 한다. 주위에서 날 알아보고 역할이 커졌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 천천히,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시나리오를 선택할 것이다. 

- 연극 후배들과는 자주 만나는 편인가

무대나 카메라 앞이나 역할에 대해 숙지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같지만 어쨌든 서로 다른 매체다. 내가 '범죄도시'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 카메라 앞에 서게 됐고 이름 있는 배우들과 호흡하고 있는 이 모습이 누군가에겐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 그래서 더 후배들과 자주 만나 내가 느낀 것들, 잊을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는 거다. 또 후배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내겐 너무 재밌고 행복한 일이다.

- 배우가 극한직업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나

딱 한 번 추운 날 야외에서 쉬지도 못하고 밤새 떨 때 정말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이처럼 물리적인 환경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모든 직업이 저마다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배우만 극한직업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극한 직업'이라는 우리 영화 제목이 더 마음에 들었다. 누구든 자기 상황에 대입할 수 있는 제목이지 않나. 

- 2019년은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

'암전', '롱 리브 더 킹', '퍼펙트맨', '사바하' 그리고 '킹덤'까지 개봉을 앞둔 작품들이 많다. '범죄도시'가 잘 된 덕분에 지난 1년을 정말 정신없이 달려왔다. 아직 차기작이 결정된 것은 없고 당분간은 개봉작들 홍보에 주력할 생각이다. 내가 전면에 나서서 작품을 홍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열정적으로 홍보 활동에 임할 생각이다. 홍보가 끝나면 잠깐 휴식기를 가져서 또다시 열심히 작업할 수 있도록 몸과 정신을 잠시 쉬게 할 거다. 그리고 나면 작년처럼 많지는 않더라도 좋은 시나리오, 좋은 캐릭터를 만나 올해도 배우로서 열심히 연기하고 싶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OBS플러스 김지원 기자 zoz95@o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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