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S플러스=정솔희 기자] 전라북도 진안의 한 작은 마을에는 고추 따러 가자는 남편과 학교를 다녀오겠다는 아내가 있다.

1일 오후 방송되는 OBS 멜로다큐 '가족'에서는 일밖에 모르는 남편 정재선(74)과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열혈 학생  배봉순(71) 부부 이야기가 전파를 탄다.

가을걷이가 시작된 요즘 정재선 할배의 마음은 급하기 만하다. 따야 할 고추가 한 가득이고, 고추 탄저병이 생기지 않도록 약도 쳐야 하는데, 봉순 할매는 오전에는 한글 공부를 하러 가겠다니 할배의 속이 타들어 간다.

잔소리도 해보고 호통도 쳤지만 아내의 공부 욕심을 막기란 역부족이다. 수확도 한철인지라 일꾼을 불러도 손이 부족할 판에, 아내는 학교 갈 시간만 되면 하던 일 팽가치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 전적이 많았기에 남편의 신경도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졌다.

그런 이유로 영감님 눈치 보느라 벌써 3주째 결석 중인 할매는 애가 탄다. 할매의 주장은 오전 3시간만 공부하고, 방과 후에는 밤늦게까지도 일을 하겠다는 것. 하지만 일개미 남편에게 통할 리 없고, 고집불통 남편이 야속하기 만하다.

앞서 봉순 할매는 7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어머니까지 일찍 돌아가셨으니 학교 문턱은 밟아보지도 못했다. 22살의 나이에 결혼해 5남매 뒷바라지하랴 농사일하랴 평생 한글 공부조차 꿈도 못 꾸고 살았다.

자식들 출가시켜놓으니 어느덧 칠순의 나이가 됐지만, 평생의 한이요 소원이었던 한글공부를 시작했다. 봉순 할매는 삐뚤빼뚤 맞춤법도 틀리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글을 깨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말들을 일기에 쓰고 손주들에게 편지도 쓸 수 있으니 평생의 한을 푼 것 같아 속이 시원하다.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할매에게 공부는 단순한 의미가 아닌 평생의 꿈이다.

과거 22살, 25살에 처음 만나 50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늘 밝고 긍정적인 봉순 할매와 무뚝뚝하기로는 첫손가락에 꼽히는 재선 할배. 왕년에 가수가 꿈이었다는 봉순 할매가 한 가락 뽑을라치면 할배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비위를 맞추는 데 도가 텄다.

사실 할매가 3년 동안 눈치를 보면서도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건 농사가 바쁠 때만 아니면 은근슬쩍 눈감아주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 할배도 평생 고생하며 살아온 아내를 잘 알기에 아내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남편이 못마땅한 이유 중 하나가 아내 없이 혼자 점심을 먹기 싫어서라니 티격태격해도 사이좋은 부부가 틀림없다.
 
한편 OBS '멜로다큐 가족'은 2일 오후 11시 5분에 방송된다.
 
(사진=OBS)
 
OBS플러스 정솔희 기자 hwasung654@o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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