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S플러스=정솔희 기자] 사실 김상경은 형사 역할을 그렇게 많이 한 배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김상경을 떠올렸을때 가장 형사답다라는 이미지를 매칭하는 건 그만큼 임팩트있는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김상경의 형사 3부작이라는 별칭이 붙은 영화 '살인의뢰', 그 안에서 김상경이 보여주는 형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 "'살인의뢰', 결론을 내린다는 점 맘에 들었다"

'살인의뢰'는 인물들이 크게 사건을 두고 3년 전후로 변화한다. 특히 동생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형사 역할의 김상경은 3년 전후의 표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단기간에 10kg를 감량했다는 사실로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런 노력에 대해 김상경은 배우로서 하나의 즐거움을 자극해 '살인의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고백했다.

"배우로서 영화 안에서 많이 변하는 걸 좋아한다. 3년 전후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변화가 생기는 캐릭터라 연기적으로 보여줄게 많아서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봤을때 어쨌든 결론을 내린다는 게 맘에 들었다. 어찌됐든 영화가 개봉됐을때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인데 사형제도나 인권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하면서도 '살인의뢰'를 선택한 김상경이 본 자신의 영화는 어땠을까. 가장 먼저 그는 함께 호흡한 배우들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박성우, 김성균 그리고 김상경의 조합이 매우 '독특하다'고 생각했다고.

"(김)성균이나 (박)성웅이나 굉장히 궁금한 배우였다. 영화에서만 보고 한 번도 못봤다. 성균이는 좀 무서울 줄 알았다. '범죄와의 전쟁'이나 '이웃사람'을 보고 나쁜놈 중에서도 정말 안 만나고 싶은 범인이었기 때문이다(웃음). 성균이가 연기할때와 아닐때가 아주 차이가 많이 나서 놀랐다. 정말 순하고 상냥한 청년 느낌이다. 성웅이는 원래 '신세계' 톤이 있다. 약간 진득하고 무게감 있는 스타일이었다. 술도 많이 마시고 재밌었다"

김상경은 술도 같이 마시면서 행복한 촬영장이라고 고백했지만 올누드 액션신을 소화하기 위해 끝임없이 몸을 만들어야했던 박성웅은 물론 김상경 스스로까지 먹을 것을 끊고 체중을 감량해야하는 혹독한 촬영장임은 분명했다.

"체중을 10일만에 줄여야했다. 그렇게 확 차이나게 만들기 위해서 먼저 찌웠다. 갑자기 절대적인 몇kg가 아니라 3년 전후의 변화가 중요하니까 90kg까지 찌웠다. 밥을 먹고 또 먹고 간식도 먹고 저녁에 볶음밥에다 막걸리 두 통을 마셨다. 역류성 식도염처럼 체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살을 빼기 시작했을때 굉장히 빨리 빠졌다. 몸이 부대끼고 있으니까 원래 체중까지 빨리 내려갔다. 그 다음에 내 기본 몸무게에서 3kg 빼는게 가장 힘들었다"

김상경, 김성균, 박성웅 모두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배우였다. 그만큼 세 배우는 술을 논외로 놓고서라도 공통분모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김상경은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팔불출 가족 사랑을 자랑하는 배우들 중 베스트로 김성균을 곱았다.

"성균이가 제일 특이하다. 휴일에도 아이들하고 와이프를 데리고 밖에 나간다. 그러면서 진짜 사람 많았다고 하더라(웃음). 참 착한 아빠다. 그래서 그런지 와이프하고도 사이가 좋다. 본인 말로는 손길만 스쳐도 애가 생긴다더라. '한밤의 레드카펫'에서 관객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누가 어떻게 애가 생기냐고 물으니까 술을 많이 먹고 필름이 끊기면 된다고 하더라(웃음). 그게 무슨 답이냐. 본인의 경우는 그렇다더라"

'살인의뢰'는 겉으로 보여지는 잔혹성에서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다시 한 번 피해자와 살아남은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래서 사형제도라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영화 속 동생을 잃은 태수를 연기한 김상경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솔직히 아직까지 태수가 많이 묻어 있다. 지금은 동생이 죽은 태수의 심정에 많이 젖어있다. 이미 그쪽으로 치우쳐있는 감성이 많아서 찬반을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태수, 김상경이라는 배우를 내려놓고 일반 관객들이 느낄 감정이 제일 궁금하다. 지금은 내 동생이 죽고 내 가족이 파괴됐다면 당연히 복수하고 싶을 것 같다. 이걸 과연 감성으로 볼것인지는 생각해봐야할 문제인 것 같다"

앞서 김상경은 '살인의 추억', '몽타주'를 통해 형사 역할을 맡았었지만 이번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고 강조했다. 이전에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열정이 넘치는 형사였지만 이번에는 피해자이자 형사이기 때문에 더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이 컸다고.

"이전 영화에서는 내 일이 아니었는데 '살인의뢰'는 살인사건이 내 일이 됐다. '살인의 추억'때 충격받았던 일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님도 그렇고 배우들도 모두 피해자와 그 가족을 위해 영화를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가 잘되고 이슈가 되니까 당시에 실제 범인을 잡으려는 모임이 생겼다. TV프로그램에서도 사건을 다뤄서 실제 피해자 가족을 찾아갔는데 피해자 가족들이 잊을만한데 왜 찾아오냐고 싫어하더라. 결국 '살인의 추억'을 보고 흥분했던 사람들은 모두 제3자였던거다"

# "김상경 답게 사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김상경은 지난 1998년 MBC 드라마 '애드버킷'을 통해 데뷔 후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기 한 길을 달려왔다. 그 오랜시간 동안 슬럼프라는 것은 없었을까.

"정말 재밌는건 슬럼프는 자기만 안다. 어떤 책에서 '누구도 자기 인생에 자기 자신만큼 환호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너무 와닿더라. 나는 죽도록 힘든데 남들은 편하게 한다고 생각하더라.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누군가 내게 2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거다. 그때 행복한 순간이 많았지만 기성 배우가 되려고 너무 피곤한 생각들을 많이하고 노력했다. 딱 하루만 대학교때로 돌아가서 연극 연습 끝나고 가던 단골 술집에서 막걸리 마시는 것말고는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배우의 길을 걷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고 수련했던 20대의 김상경은 그 벽에 부딪쳤을때 어떻게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을까. 그는 당시 나이답지 않은 고지식한 답변을 내놓았다. 등산, 술 그리고 자연.

"확실히 사람을 치유해주는 건 자연같다. 산을 돌아다니다보면 마음이 너무 편안해진다. 너무 복잡하고 커다랗던 문제도 점점 작아진다. 누군가 지금 나를 보고 소위 '리즈 시절'이라고 말하는데 인생을 경험하면서 이것도 금방 지나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신 머리 아픈 일이 생길 수 있을때도 금방 지나갈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졌다"

"나 답게 사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송강호도 아니고 하정우도 아니고 이정재도 아니고 정우성도 아니다. 그냥 나는 나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헛소리 잘하는 문상무가 나일 수도 있고 진중한 세종대왕도 나였던 것 같다. 나 다운걸 자꾸 생각하다보니 고민이 생겨도 옛날만큼 고통스럽지 않다. 나이 먹으면서 유연해진거다. 지금은 언젠가 감기가 낫듯이 노래처럼 다 지나간다"

그런 김상경에게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 바로 그의 첫 번째 영화이자 홍상수 감독과의 첫 작품 '생활의 발견'이다. 전통적인 의미 그대로의 배우 김상경과 대본도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마에스트로 홍상수 감독의 만남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웃긴게 인물을 설정하고 만드는 자체가 없는 사람과 처음 작업했다. 그런데 하면서 머리가 너무 깨끗해졌다. 나는 정말 행운인 사람이다. 가장 자유로운 홍상수 감독과도 해봤고 가장 치밀한 봉준호 감독과도 해봤다. 덕분에 이쪽도 할 수 있고 저쪽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500만 영화도 몇 개 있고 '극장전'으로 깐느도 가보고 큰 행운이 많다"

그리고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최근 종영한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다. 기존에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가볍고 발랄하기까지한 이미지를 얻게 된 문상무를 연기하면서 그는 복받았다고 생각한다고.

"요즘 어린애부터 어른까지 나만 보면 웃더라. 예전에는 왕도 하고 변호사, 검사 이런 역할을 해서 그런지 나를 어렵게 생각했다. 물론 홍상수 감독 영화를 하면서 찌질한 역할도 했지만 예술적인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라마 이후로는 편하게 대하더라. 나같이 사는 길을 잘 가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운이 좋은거다(웃음)"

김상경은 우리가 익히 알고 들었던 이미지와 달리 유쾌한 사람이다. 같이 호흡한 배우들에게 '아줌마 같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말하는 걸 좋아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다. 한 번을 만나더라도 밝은 기운을 전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훨씬 더 멋지고 즐겁게 인생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인간은 하나로 설명될 수 없다. 기본적인 세계관은 오늘 하루를 가장 즐겁게 살자다. 그런데 자기가 재밌게 안하면 안된다. 무슨 일을 하든 충분히 즐거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침마다 아들에게 '멋진 하루를 만들어라. 멋진 하루는 누가 너한테 주는게 아니라 니가 만드는 거야'라고 얘기한다. 우리 아들도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나는 배우로도 그러고 싶다. 화면에 나오면 기분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항상 재밌고 웃게 되는 그런 배우이고 싶다. 그게 제일 목표다"

김상경은 아마도 '살인의뢰'가 형사 역할을 하는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운을 뗐다. 하지만 이것 역시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또다시 배우 김상경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는 주저없이 다시 한 번 스크린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형사의 얼굴과 몸짓을 하고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미 봤던 무언가가 아닌 김상경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무언가일것 역시 분명하다. 앞으로 그는 또 어떤 모습으로 관객을 즐겁게 할 지 기대해본다.

(사진=권희정 기자)

OBS플러스 정솔희 기자 hwasung654@o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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