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S플러스=정솔희 기자] 냉정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필터를 거치지 않는 바른 말을 일삼는 강력한 카리스마. 배우 윤여정을 생각나게 하는 이미지다. 그런 그녀가 달달한 노년 로맨스에서 귀여운 금님씨가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윤여정은 영화 '장수상회'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미처알지 못했던 그녀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마음껏 보여줬다.

# "'장수상회' 금님, 사랑스럽게 보이려 애썼다"

'장수상회'는 인생 끝자락에서 만난 까칠한 성칠(박근형 분)과 금님(윤여정 분)의 달달한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연기 경력만 도합 103년에 빛나는 배우 박근형, 윤여정의 출연 소식에 개봉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거기에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대가 강제규 감독의 새로운 도전까지 기대하지 않는게 이상한 작품일 정도다.

"배우로서 요즘 너무 젊은 애들 연애 얘기만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장수상회'를 하면서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끝나고보니 주인공으로서 책임감이 생기더라. 물론 박근형이 책임져야되는 부분이다(웃음). 영화가 흥행이 되느냐 안되느냐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저서 좋지만은 않다는걸 알게 됐다"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작품에서 부담감 대신 유쾌함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모두 강제규 감독 덕분이었다. 그간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촬영하며 쌓았던 그의 꼼꼼함이 더욱 빛이 발하는 현장이었다고.

"나 같은 경우는 현장에서 컨디션에 감독에 따라 결정되는 편이다. 강제규 감독은 노련한 감독이고 큰 영화를 했던 사람이라 정말 불편하지 않게 타임 스케줄에 따라서 정확하게 진행하더라. 사실 일정보다 너무 일찍 끝내줘서 당황한 적도 있다. 그래서 힘들지 않게 정말 유쾌하게 촬영했다"

윤여정은 드라마 '참 좋은 시절' 이후 곧바로 '장수상회' 촬영에 돌입했다. 이제는 한 번에 두 가지 작업을 할 체력은 안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서 다양한 작품을 의욕적으로 소화해내는 박근형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고 말하는 윤여정은 영화 속 금님씨처럼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강(제규)감독이 굉장히 많이 배려해줬다. 그래도 놀이기구 타는 장면은 정말 힘들었다. 실용주의적이라 몸이 힘든 것만 기억한다. 박근형 선생님은 멀미약을 먹어서 멀쩡했다. 나를 사랑하는 남자면 나도 알려줬어야 하지 않나. 혼자만 먹더라. 속이 매스꺼운데도 좋아하는 척 하려니 정말 힘들었다"

"연기적으로 힘들다는 건 내 노력 여하나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직업이 배우인데 어떤 신이 힘들어서 못한다면 그냥 집에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물리적으로 몸이나 환경이 힘든 것만 기억난다. 낭만적인 성격이 아니라미안하다(웃음)"

'장수상회' 속 금님은 사랑스럽고 어여쁜 여자였다. 스스로를 '예쁘지 않은 배우'라 칭했던 윤여정은 영화 속에서 그려진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봤을까.

"예쁘지 않은 여자가 예쁜척하면 흉하다. 그래서 그런건 안했다. 강감독이 사랑스럽게 보이도록 잘 표현해준 것 같다. 분홍색 옷도 평생 처음 입어봤다. 평소에 꽃무늬나 분홍색 옷 안 입는다. 강감독이 잘 표현해줬던거지 내가 연기를 어떻게 하겠나. 갑자기 수술하고 찍을 수도 없고(웃음). 사랑스럽게 보이려고 애는 썼다"

# "60 넘어서는 보너스 인생이라 생각"

젊은이들을 위한 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등장한 '장수상회'는 그래서 더 뜻깊은 영화다. 우리나라의 좋은 배우들이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될 작품이되지 않을까.

"이제 고령화 시대가 됐다. 내 친구들도 의외로 영화관에 많이 가더라. 영화관에는 젊은 사람들만 가는 줄 알았다. 그게 제일 돈 안드나더라(웃음). 친구들이 그러더라. 젊은 애들 연애하는 건 별 관심 없다고. 그렇게 연애에 목숨걸 나이는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잘돼서 이런 종류의 다른 영화가 나와서 영화보러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뜻깊은 영화에 함께 출연한 이가 다름 아닌 박근형이기에 더욱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몇십년전 드라마 속에서 만났던 인연 이후 작품은 처음이었지만 그동안 농익은 연기 내공을 쌓았던 두 사람의 호흡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서로의 허물을 다 안다. 장단점을 다 안다. 그래서 특별한 케미보다도 둘 다 프로 선수기 때문에 사생활을 흩트리지 않고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서로 직업인으로 만난거다. 진짜로 그런걸 느끼면 큰일나지 않겠나(웃음)"

윤여정은 스스로를 열정적인 배우가 아니라고 말하며 연기 욕심 많은 박근형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음을 밝혔다. 몸으로 힘든 걸 하지 않으려는 윤여정과 다시 연극학도로 돌아가 연기에 임했다는 박근형, 두 사람은 달랐지만 자신의 연기 내공을 자연스럽게 극에 녹여내다는 것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호가 안해 윤여정이다. 몸으로 힘들거나 스케줄이 힘들면 안 한다. 박근형 선생님은 '장수상회' 주인공을 하면서 드라마도 했다. 나는 그만큼 열정적이지 못한다. 노는 걸 좋아한다. 인생을 살다보니 꼭 이쪽이 좋고 나쁘고가 없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다. 내가 어떤 작품을 거절하면 누군가에게는 좋은 기회를 주는게 아닌가. 나도 그래서 작품을 하게 된 적도 있다. 인생이라는게 그렇다"

그렇게 연기 한 길을 걸어온 윤여정이 앞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연기라는 것의 '매너리즘'은 식상함이라고 정의했다.

"사람들은 평론가가 아니지만 누구나 얘기하지 않나. 어느 순간 연기자들을 보면 몰입을 못하고 단점만 보게 된다. 그게 매너리즘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빠지지 않고 잘 비켜나가는 사람은 없다.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얼굴로 다양한 걸 해야되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신선하게 느끼겠는가. 영원한 과제인 것 같다"

"배우는 항상 장애물 경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뭐 하나를 넘으면 하나가 또 있다. 새로운 역할에 도전해서 넘기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역할을 원한다. 그걸 또 하게 되면 매너리즘이다. 그걸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계춘할망'도 지금까지와는 다른거라 도전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윤여정에게 자신만의 버킷리스트가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없다고 답했다. 60이 넘어서부터는 보너스 인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앞으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좋아하는 사람과 순서대로 하고 싶고 현재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윤여정. 청춘보다 아름다운 현재의 그녀. 우리는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사진=퍼스트룩)

OBS플러스 정솔희 기자 hwasung654@o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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